| 한 달에 한 번 씩 우리 사무실에 여성 노동자들이 모였다. 병원에서 간호사, 약사, 임상병리사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인데, 모두 2 년여 세월 동안, 해고 -> 폐업 -> 위장폐업 분쇄 투쟁 -> 점거 농성 -> 노동조합 해산의 깊은 상처를 함께 겪은 사람들이다. 한번은, 그 중의 한 명이 대담하게도 엄청나게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온 적이 있었다. 모임 내내 그 여성은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 훤히 드러나 보이는 다리의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살결을 감추느라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 옷을 뭐하러 입고 나왔어요?” 내가 한 마디 하자 다른 동료 노동자가 두둔하며 말했다. “얘가 원래 우리 병원에서 유일하게, 바깥에 내 놓아도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쪽 뻗은 다리 하며...” 점심식사를 하러 칼국수집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화제가 계속 ‘짧은 바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며칠 전, 대전 국립묘지에 묻힌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계룡산 동학사에 잠시 들린 적이 있었는데, 동학사까지 오르는 길에 보니, 눈이 부시도록 짧은 바지를 입고 산에 올라온 젊은 아가씨들도 참 많더라는 이야기를 내가 했다. “그런데, 어떤 아가씨는... 스타킹 밴드 선이 다 보이더라구.” “어머, 하 선생님, 그런 건 못 본 척하는 거예요.” 노동조합 위원장이 눈을 흘겼다. 나는 계속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같았으면 '성희롱'으로 지탄 받았을 일이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하나 같이 모두 짧은 바지를 입고 내려오는데, 밴드가 안 보이면 요즈음 패션에 아예 끼이지 못하는 모양이더라구.” 칼국수를 먹다가 사래가 들었다며 옆에 있던 노동자가 내 어깨를 한 대 힘껏 때렸다. 비빔국수를 하나 더 시켜 입가심으로 후식 삼아 나누어 먹고, 문래동 칼국수집 허름한 쪽문을 열고 나서니, 그 새 부슬부슬 내리던 이슬비가 장대비로 바뀌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하 선생님 우산 쓸 거다.” 짧은 바지를 입고 온 사람이 내 우산 속으로 쏘옥 들어서며 말했다. 나는 입고 있던 카디건 옷을 벗어서 한 쪽 어깨에 걸치고 있었는데, 옆에서 혼자 우산을 쓰고 가던 사람이 말했다. “하 선생님, 그 옷 이리 주세요. 빗물에 다 젖겠어요.” “이것두 패션이다. 왜.” 우리는 비 내리는 길에서 모두 웃었다. 뭔가 더 계속 이어져야 할 것 같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싱겁긴... |
뱀발 : 부산에서 KTX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오랫만에 새마을 기차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부산에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새벽 시간에 영등포에 내려 광명을 거쳐 집으로 오는 늦겨울 밤 거리에서, 20년 쯤 전의 옛일이 명징하게 되살아나더군요. 새벽에 집에 들어와 끄적거려 봤습니다. 가끔 이럴 때 있잖아요. ㅋㅋ...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http://www.labordream.net/zb40pl3/zboard.php?id=hani&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5 아, 이 얘기도 이 사람들과 함께 했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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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노동자들을 집에 초대했다. 노동조합을 설립한 뒤 2년 동안 '뼈 빠지는' 고생을 하다가 결국 모두 해고된 사람들이었다. 그 고생에 내가 기여한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녁 한 끼로 그 죄를 다 갚을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도저히 없어서 저녁 자리를 마련했더니 모두들 기쁘게 와 주었다. 안해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직장에서 조퇴까지 해 가며 진수성찬을 마렸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나서 한 잔씩 하며 그동안의 아픈 경험들을 안고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고백' 비스름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그동안 죽도록 고생했는데, 그런 고생을 한번도 안 해 본 인간들과 똑같이 살아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내가 말문을 열었다.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안해의 순서가 되었을 때 안해가 말했다.
"내 경험으로 얘기하건데, 거창하게 무슨 '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소신이 있어서 어떤 활동을 해야 할 사람은 아예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만약 부부가 함께 뛸 거라면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는 낳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안해와 아이들에게 충실할 수 없어 죄스럽고 안해는 안해대로 남편의 갈 길을 가로막는 장해물 역할이나 하는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니, 그게 무슨 꼴이냐구요"
그날 사무실에 함께 있는 여직원이 음식 차리는 일을 도와주러 함께 갔었는데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내게 말했다.
"어제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지운이(내 아들) 엄마 칭찬만 했어요. 하 선생님 부인이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자기들은결혼하면 절대로 그렇게 못할 거라고...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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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병원 동지들, 지금도 가끔 모인답니다. 그날 우리집에 선물로 사 온 인삼벤자민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안해가 잘 키우고 있습니다. 잎이 마르거나 다 떨어져 버려서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난 적도 있습니다.
긍정적인마인드 코스프레이야기 내 손으로 만드는 인형 비트윈스 나는 내일의 ★ 스텝웰 그들이 사는 세상 계곡물이 흐르는 까칠한 엄마 피크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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